공포와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성명  
   achor ( Vote: 99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잡담

네 시를 향해 가는 시간.

생각해 보면 준비해야할 것도 많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것 없는 이 시간.

그냥 그렇게 커피도 마시고, 우동도 끓여먹으며

조용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여유가 생기게 되면 슬퍼지기 때문이지요.



제 옛 홈페이지들을 보았습니다.

간간히 링크 깨져있는 부분들,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더군요.



링크를 따라 한동안 들리지 못한 옛 친구의 홈페이지에 가보기도 하고,

그 시절 힘들게 스캔했던 어렸을 적 사진들도 보고,

옛 게시판 글들도 보았지요.



대학 2학년, 그 시절에는 정말 머리가 긴 줄 알았었는데,

지금 보니 엄청나게 어색할 정도로 짧더군요.

정말 머리가 많이 자랐나 봅니다.

이젠 조금 잘라볼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포를 느꼈습니다.

공포를 느꼈던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네요.

어린 시절에는 '전설의 고향' 같은 걸 보면서도

쇼파 뒤로 숨곤 했었는데... ^^;



혼자 있는 이 시간,

누군가 다가와 제가 칼을 찌르는 상상을 꾸준히 했습니다.

저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해야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죽으면 얼마나 허망할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여행을 한 번 다녀와야겠네요.

작년 즈음에는 여유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 더 프로그래밍 공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여유만 생기면 잡념 뿐입니다.

그리고 잡념 후에는 며칠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술만 마시고 싶어지죠.



오늘 밤에는 야혼도 없네요.

대체로 외로운 밤이면 야혼이 함께 외로워해줬던 게 위안이 되곤 했었는데.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집니다.

별로 하고픈 얘기도 없는데 무슨 얘기를 어떻게든 늘어놓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빨리 건강을 되찾으셨으면 좋겠네요.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족, 효, 부모 같은 단어들은

어쩐지 구린 냄새가 나서 무척이나 싫어했었는데,

이름에 '효'가 들어가는 사람도 이유 없이 싫어했고

제 일에 가족이 연관되는 게 참 싫었었는데

역시 조금 나이 먹었다고 그 느낌이 다르네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 슬퍼집니다.

그간 참으로 속 많이 썩였지요.

20살이 되자마자 거나하게 술에 취해 독립하겠다고 아우성치기도 했고,

가출하여 한동안 모습 안 보이다가 경찰서에서 대면하기도 했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대면하기도 했고...



제 어머니, 저 때문에 참 많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아직도 저는,

가출해 있던 시절 제 삐삐에 아무 말씀 못 하시고

눈물만 흘리시던 제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그 시절 무엇이 저를 그렇게 이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그저 집에서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하얀 밥 먹으며

편안하게 살아갈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저는

저도, 또 어머니도 모두가 힘들던 그 길을 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삶의 조금의 관심이 들어와도 강하게 저항하였기에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지내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셨던 제 어머니,

제가 사고 치고 나면 어디선가 나타나셔서 묵묵히 뒷감당을 해주셨던

제 소중한 어머니,



부디 빠른 쾌유하소서.

생전 한 번 부모님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이 못난 아들,

그간 못했던 효도, 후회 없이 할 수 있도록

부디 빠른 쾌유하소서.

제발 빠른 쾌유하소서...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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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2/10/2025 21: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