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밤, 또 일찍 잠들어
새벽에 깨어나 일을 살살 시작해 보고 있던 찰라.
아침부터 전화다.
경찰청 사이트에 문제가 생겼단다.
계획에 의하면 추후 유지보수 인력을 뽑았어야 했거늘
그들이 자금란을 핑계로 뽑지 않았으면서
개발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유지보수를 요구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나는 내가 맡은 일 하기에도 벅찬데
내가 맡지도 않은 일까지 할 여력도, 생각도 전혀 없다.
그래도 인간의 삶이 그렇게 정형적인 게 아님에.
어쩌겠는가.
사이트가 돌지 않으면 경찰청 업무가 안 된다는데.
그래서 도와주고픈 마음이 들 때 다시금 심금을 울리는 소리.
강압.
잘잘못을 가리자면 나는 당당하다.
왜 잘 돌아가던 사이트, 괜히 만져서 멈춰놓고는 책임을 요구하는가.
왜 계획대로 유지보수 인력을 선발하지 않고 옛 개발자에게 인정을 호소하는가.
나도 나름대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업무만 중요시 한다.
그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다짜고짜 사이트가 돌지 않으면 안 된다며, 급하다며
당장 고쳐달라고 요구한다.
그렇지만 나도 급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에게는 경찰청 일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내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럴 때는 그들이 내게 부탁을 해야하는 것이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해놓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순간 지난 날처럼.
좆까. 씨발새끼야.
경찰청이 잘 돌아가든 말든 나도 내 일로 바빠. 씨발아.
목 끝까지 올라오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한 달 전쯤에도 이런 경우가 있어
나는 씨팔, 뭔데 지랄이냐며 한 바탕 욕을 한 후에
경찰청에 내게 전화했던 사람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참고 또 참았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무언가 불가능한 일을 요구했을 때,
씨팔. 이런 걸 어떻게 해. 니가 해 봐. 개새야!
라고 말하는 대신에,
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에 조리있게 불가능함을 설명하는 게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이라던 말.
그 말은 들은 이후 오랜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서 나를 조절해 주는 것 같다.
목 끝까지 올라온 씨팔!을 참아낸 채
네. 한 번 알아보지요. 라고 힘겹게 이야기 해줬다.
세상 성질대로 사는 게 참 힘든 일임을 실감한다.
내가 전혀 꿀릴 것도 없음에도,
나는 이미 경찰청 돈도 다 받았고, 다시는 경찰청과 일할 계획도 없음에도
내가 참아주었다.
그런 덜 된 인간의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요구를
법률적으로 보든, 이해관계적으로 보든 유리한 입장에 있던 내가 참아주었던 게다.
누구라도 자기 성질대로 살고 싶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어느 사람이 굴욕과 억압 속에서 살고 싶으리.
그럼에도 오랜 사회 생활을 한 어른들이
굳이 성질 죽이고 살아가는 까닭은
단순히 처자식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삶이 정의로만 구현될 수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니
내가 한 번쯤 가볍게 져주는 대신
편하게 사는 것도 좋은 삶의 방법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날로 먹어만 가는 나이와 어느새 가버린 여름.
그리고 풀어버리지도 못한 채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에
찜찜한 아침이다.
아. 젠장.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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